(글)현미의 영양을 얻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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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건강식을 해오면서 깨닫게 된 내용이니, 자신의 견해와 맞지 않으면 그냥 멍멍이소리라 무시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현미를 맹신하고 먹었습니다. 오죽하면 필명이 "현미교주"겠습니까만, 지금은 변절자가 되었습니다.^^
정미소 사장님 말씀이다. 한여름에 쌀을 택배로 보내는데, 백미에서는 벌레가 생기지 않는데 현미는 가는 도중에
벌레가 생겨 애로가 많다고 한다. 현미에 영양이 많기 때문에 벌레가 빨리 생기는 것이다. 현미는 분명 백미보다는 영양이 많다.
그리고 건강 선생들에게 들었다. 백미에 없는 쌀눈과 미강에 쌀의 영양 90% 이상이 들어있다. 백미는 오백식품 중 하나로 영양은 없고, 혈당만 올리는 설탕 덩어리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현미를 맹신하게 되었다.
과연 100번씩 저작하면 현미의 영양을 얻을 수 있을까 알아보자.
▶그럼 먼저 밀을 살펴보자.
지구인의 절반은 밀을 주식으로 삼았다. 고대 서구인들은 통밀을 어떻게 먹었는가? 쌀처럼 단순하게 쪄 먹었는가? 발효(빵)시켜 먹었는가?
통밀로 빵을 만드는 과정은 매우 수고스럽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다.
무거운 맷돌로 통밀을 갈아서, 따뜻한 곳에 하루 이상 두었다가, 화덕에 구워야 먹을 수 있다. 통밀을 쌀처럼 쪄 먹으면 매우 편할 것이다. 그런데 왜 빵으로 먹었는가? 그 이유는 생존을 위해서다. 통밀을 불려서 단순하게 밥처럼 쪄서 먹으면 소화가 어려워 영양도 얻을 수 없고, 소화기가 망가지기 때문이다.
발효란 어떤 작용인가? 발효란 미생물이 증식하는 과정이다. 이 미생물은 빠른 속도로 증식하면서 효소를 분비해 유기물을 분해한다. 이 효소는 화학적으로 복합분자를 단순분자로 쪼개는 동시에 독성도 제거한다. 그래서 발효시키면 독성이 제거된 안전한 음식이 되면서 동시에 소화흡수가 쉬운 음식으로 변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막 담은 파김치나, 무김치, 갓김치는 먹기 힘들다. 발효가 되면 익었다고 표현한다. 그럼 많이 먹어도 속이 편하고, 감칠맛이 난다. 독성이 제거되고 영양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바로 미생물이 효소를 분비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선조들은 콩을 밥에 놓아먹으면 편한데, 빵을 만들 때처럼 수고스럽게 왜 "청국장" "된장"으로 발효시켜 먹었고, 일본인들은 "낫도", 인도네시아는 "템페"로 발효시켜 먹었는가? 경험치로 콩은 단순하게 쪄 먹으면 소화가 안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소화가 안된다는 뜻은 영양도 얻을 수 없고, 해롭다는 뜻이다. 이게 경험치다.
소싯적 어머니들은 덜 여믄 풋 강낭콩이나, 완두콩만 밥에 놓아 먹었다. 서양인들도 풋 완두콩을 먹는다. 덜 여물었을 때는 독성이 적고, 소화가 쉽기 때문이다. 이게 경험치다.
전통음식이나 조리법은 수 많은 사람들의 경험치와 시행착오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각 나라마다 전통을 이어온 조리법이나 섭생 방식은 최선의 선택인 것이다.
통밀을 단순하게 익혀먹어도 소화가 되었다면, 고대서구인들은 수고스럽게 빵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빵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럼 동남아인들도 경험치로 현미를 먹으면 백미보다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 않았을까?
▶그럼 현미를 살펴보자.
동남아인들은 쌀을 주식으로 삼았다. 그런데 쌀을 먹은 모든 민족은 현미를 먹지 않고, 백미를 먹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천년이 넘게 쌀을 먹어오면서 현미의 영양을 몰랐을까? 산속에 숨어있는 약초의 효능까지 밝힌 허준 선생이 현미의 영양을 몰랐을까?
지금은 영양과잉으로 질병에 걸리지만, 과거 선조들은 기근에 수시로 시달리고, 영양 부족으로 질병에 걸렸는데. 현미의 영양을 몰랐을까?
우리 선조들은 소도 못먹을 것 같은 토란대를 말려서 먹이로 삼고, 도토리를 묵으로 가공해 먹었고, 기근에 시달리면 초근목피로 연명을 했다. 그만큼 영양이 절실했는데도 현미를 먹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현미를 먹어봤자 영양을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과거에는 도정기술이 없어서 현미를 먹을수 밖에 없었다.
모든 백성이 현미로 먹었다면, 이런 말이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었을 것이다. 현미로 밥을 짓기 위해 밤새 물에 담가놓았다.
임금이 과연 가마솥에 한 거친 현미밥을 먹었을까? 양반은 흰쌀밥을 먹고, 평민들은 현미를 먹었다. 어디에도 그런 기록은 없다. 아무리 못살아도 백미를 먹었다는 뜻이다.
쌀은 디딜방아로 껍질(미강)이 쉽게 벗겨진다.
과거 밥상을 보면 고봉밥이다. 과연 현미로 그렇게 먹을 수 있을까?

소싯적 어머니들은 현미뿐만 아니라 곡식은 대부분 외피를 제거하고 먹었다.
보리는 절구통에 갈아 껍질을 벗기고, 한번 삶아놓았다가, 쌀과 섞어 밥을 했다. 보리는 쌀보다 소화가 훨씬 어렵다.
그래서 불로 두 번 익히는 것이다. 그래도 보리밥을 먹으면 방귀가 많이 나온다. 소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들깨는 외피를 거피하고 먹고, 녹두도 껍질을 제거하고 먹었다. 곡물의 외피는 왜 소화가 어려운가? 외피는 섬유소다. 이 섬유소는 대장에서 장내유익균의 먹이가 된다. 즉 대장에서 발효되어야 그 영양을 얻게 되는데, 분해가 어렵다.
현미는 통보리나, 밀보다는 쉬워보이지만, 모든 곡식(씨앗)은 추운 노지에 떨어져서, 바이러스나 세균의 침입을 막고, 얼어죽지 않고 겨울을 나야 한다. 그래서 완전히 영근 씨앗은 분해하기 힘든 고분자 물질(섬유소)로 내부를 감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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